우리 사회에서 '일'에 대한 관념이 예전과는 달라지고 있다. '소확행', '워라밸', '파이어 (Fire) 족'이라는 말들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근면성실과 절약을 미덕으로 가르치던 우리 부모님 세대의 윤리는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낯선 구시대적 관념이 된 것 같다. 혹자는 이러한 세태에 대해서 우려섞인 시선을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20세기 분석철학의 아버지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은 이 짧은 에세이를 통해 명쾌하고 군더더기 없는 논리로 '우리는 왜 좀 덜 일하고, 좀 더 놀아야 하는가'를 설명한다. 이 책은 크게 세 가지의 핵심 논리로 요약된다.
"A great deal of harm is being done in the modern world by belief in the virtuousness of work" (일의 미덕에 대한 믿음이 현대 사회에 크나큰 해악을 주고 있다.)
"The road to hapiness and prosperity lies in an organized diminution of work" (행복과 번영으로 향하는 길은 체계적인 일의 축소에 달려 있다.)
"Education should aim at providing tastes which would enable a man to use leisure intelligently" (교육은 인간이 여가를 지능적으로 사용할 줄 알도록 취향을 길러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1. 일의 미덕에 대한 찬양은 빈자를 지배하기 위한 논리에 불과하다.
러셀은 일을 딱 두 종류로 나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첫째는 지구상에 있는 어떤 물질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이고, 둘째는 남들더러 그렇게 하도록 시키는 일이다. 해석하자면, 첫째는 생산 활동이고, 둘째는 그 외의 모든 관리 활동이라 하겠다. 재미있는 사실은 일의 결과로 나타나는 보상은 항상 후자에 집중된다는 것이다.
사회의 지배층들은 자신들이 안락하게 게으름을 누릴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은 언제나 일하길 바랬으며, 이를 위해 (자신들은 믿지 않는) 일의 미덕을 찬양해 왔다.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생활에 필요한 만큼만 임금을 받는 대신, 여가보다는 열심히 일한데 대한 보람을 통해 행복을 느끼도록 사회를 설계했다.
2. 일을 지금의 절반으로 줄여도 현대 사회는 더 잘 굴러갈 것이다.
러셀은 파격적으로, 하루 8시간 근로를 그 절반인 4시간으로 줄일 것을 제안한다. 그 논리로 너무나도 명쾌한 '핀(pin)의 예시'를 든다.
기존에 8시간의 노동으로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핀을 만들 수 있다고 치자. 어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4시간만에 같은 양의 핀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사람들은 핀을 두 배로 필요로 하진 않을 것이다.
상식적인 세계라면, 노동을 4시간만 하면 된다. 그런데 실제 세계에서는 그대신 똑같이 8시간 일하고, 그 결과 초과 공급으로 인해 어떤 핀 회사들은 망하게 될 것이고, 망한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실업자가 된다.
결국 근로자의 반은 계속 과중한 근로에 시달리고, 나머지 절반은 여가를 행복이 아닌 절망으로 바라보게 된다.
3. 일 안하고 남은 시간엔 뭐하냐고? 여가를 즐기는 법을 가르쳐라.
일하지 않는 남은 시간에 방종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다. 여가를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하는 생각 자체가 모든 행동의 가치를 수익성으로 재단하는 오류에 기반한 것이다. 교육을 통해 적극적인 여가 사용을 유도함으로써 모두가 더욱 높은 수준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짧은 덧글: 이 책은 러셀의 짧은 '에세이'인 만큼, 논리적인 명료함을 통해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신 자료에 근거한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분석까지 나아가고 있지는 않다.
'일'과 '여가'가 인간의 삶에서 가지는 의미는 얼마나 이분법적인가? 러셀은 굉장히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일의 가치는 생활을 위한 수단을 마련하는 것으로 한정하고, 행복은 오로지 여가에서 온다고 전제한다. (현대 경제학 이론은 '여가'와 '소비'를 효용함수의 두 축으로 상정한다. 따라서, '여가'의 반대 개념인 '일'은 '소비'를 통하지 않고서는 개인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없는 것으로 전제한다.)
그러나 일에 의한 인간의 소외가 극단화된 현대사회에서조차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일에서 삶의 의미와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은 인간 그 자체만큼이나 매우 다차원적이라 (아주 단순한 반복적 육체노동을 제외하고는) 개인적인 성취감, 동료와의 유대, 사회에의 기여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간의 행복 중추를 자극한다. 확실히 오늘날의 노동소외 논의는 이보다는 훨씬 더 발전해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일'의 정의는 무엇인가? 러셀의 일의 정의는 '육체노동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행위'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식경제사회에서 일과 여가 (혹은 삶)의 경계는 생각만큼 뚜렷하지 않다. 가까운 예로, 어떤 블로거가 본인의 지식과 사고를 넓히기 위한 북 리뷰를 포스팅함으로써 소액의 수익을 창출한다면 그것은 일인가 여가인가? 일과 여가 사이에도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의 논리는 OECD 평균근로시간 1위, 자살률 1위, 출산률 꼴찌인 우리 사회에는 뚜렷한 울림을 준다.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나라인데도, 주 52시간제는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있지 않은가.
참고로, 러셀은 수학자, 논리학자인데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 이 짧은 에세이를 통해 그의 아름다운 문장을 즐기는 것도 큰 재미이니, 가급적 원서로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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