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 “빅쇼트” 등의 베스트셀러로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작가 마이클 루이스의 "다섯 번째 위험(The Fifth Risk)"은 2018년 출간된 논픽션으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대통령직 인수 과정과 연방정부 기관 관리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제공합니다. 이 책은 특히 에너지부, 농무부, 상무부라는 세 개의 핵심 정부 기관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서 선거 사이클에 휘말리지 않으면서 대중들이 잘 모르는 복잡한 위험을 다루는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합니다.
"다섯 번째 위험"이라는 제목은 핵 무기 사고, 북한, 이란, 전력망 보호와 같은 명백한 위험 외에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간과되기 쉬운 위험인 '내부 프로젝트 관리'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운영 미숙이 아닌, 체계적 무지와 장기적 비전 부재가 초래하는 실존적 위협을 의미합니다. 이 책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14주 동안 머물렀으며, 버락과 미셸 오바마가 넷플릭스 시리즈 제작 권리를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인수 실패와 체계적 무지
2016년 대선 승리 후 트럼프 팀은 정부 인수 과정에서 전례 없는 무관심을 보였습니다. 법적으로 요구된 인수팀 구성조차 소홀히 했으며, 크리스 크리스티(Chris Christy) 전 뉴저지 주지사가 주도한 초기 준비는 트럼프의 측근인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에 의해 무산되었습니다. 배넌은 "트럼프는 아무것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혀를 차며 행정부의 무지를 비판했습니다. 한 에너지부 직원은 인수팀이 기관의 기본 기능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 "무선 침묵(radio silence)" 상태를 이어갔다고 증언합니다.
루이스는 이러한 무지가 우연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라고 주장합니다.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장기적 비용을 외면하려면, 그 비용을 모르는 것이 유리하다. 복잡성에 면역되기 원한다면 이해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이는 정부의 핵심 기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위험한 접근입니다.
세 개의 정부 기관과 그 임무
에너지부: 핵무기에서 에너지 혁신까지
에너지부는 미국의 핵무기 관리부터 차세대 에너지 기술 개발까지 맡고 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존 맥윌리엄스(John MacWilliams)는 에너지부의 5대 위험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1) 핵무기 사고, 2) 북한의 핵 위협, 3) 이란 핵 협정 파기, 4) 전력망 사이버 테러, 5) 프로젝트 관리 실패. 특히 셰일가스 기술은 20년 전 에너지부의 연구 지원으로 탄생했으며, 이는 정부의 장기적 투자가 민간 부문의 혁신을 촉진하는 사례로 제시됩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릭 페리(Rick Perry) 장관 임명을 통해 화석 연료 중심 정책으로 전환하며 이러한 노력을 퇴보시켰습니다.
농무부: 농촌 사회와 식량 안전의 수호자
농무부는 단순히 농업 지원을 넘어 농촌 지역 개발과 식량 지원 프로그램(예: SNAP)을 운영하며 미국 사회의 안전망 역할을 합니다. 릴리안 살레르노(전 농무부 직원)는 "농촌 주민일수록 정부에 더 의존적이지만, 정작 그들은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역설을 지적합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학교 급식 예산을 삭감하고, 농촌 개발 자금을 재편하며 빈곤층에 대한 지원을 축소했습니다. 이는 식량 안전과 지역 경제에 장기적 영향을 미칠 위험을 내포합니다.
상무부: 데이터와 기상 예보의 중추
상무부 산하 국립기상청(NWS)은 허리케인부터 토네이도까지 정확한 기상 예보로 연간 수천억 달러의 경제적 손실을 방지합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2020년 인구 조사 예산을 삭감하고, 과학적 데이터 수집을 경시하며 기상 예보의 정확성을 위협했습니다. 루이스는 "기상 예보의 경제적 가치는 연간 31조 원이 넘지만, 사람들은 무료 서비스가 당연시여긴다"며 정부의 보이지 않는 역할을 강조합니다.
위험 관리의 패러독스
루이스는 정부의 핵심 기능이 "민간이 감당하지 못하거나 원하지 않는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부의 핵폐기물 처리(The Hanford Nuclear Reservation)는 수십 년이 걸리는 프로젝트로, 정치적 관심을 받기 어려우나 실패 시 환경 재앙을 초래합니다. 농무부의 식품 안전 검사나 상무부의 데이터 정확성 역시 일상에서는 눈에 띄지 않지만, 시스템 붕괴 시 즉각적인 사회적 혼란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장기적 위험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루이스는 "무지에는 이점이 있다"며, 단기적 성과를 추구하는 정치인들이 복잡한 현실을 외면하는 전략을 비판합니다. 이는 전문가 시스템을 무시하고 정치적 충성도를 우선시한 인사(예: 에너지부에 화석 연료 로비스트 임명)에서 극명히 드러납니다.
지식 대 무지의 대립
이 책은 정부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어떤 위험을 관리할 것인가, 그리고 그 대가를 지불할 것인가?" 루이스는 오바마 행정부의 과학자들과 공무원들을 통해 전문성과 헌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의 무지가 초래할 재앙을 경고합니다. 책은 정부의 실패보다 더 위험한 것은 정부의 기능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의 무관심임을 시사합니다. 최종적으로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를 죽인다"는 문장으로, 장기적 비전의 부재가 초래할 파국을 경고하며 마무리됩니다.
짧은 덧글. 복잡한 시스템과 위험관리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가져다주는 파국적인 영향은 단순한 논리에서 비롯한 관세정책이 미국 달러 패권을 위협하고 국채시장을 뒤흔드는 최근의 예에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중앙일보 하현옥 논설위원의 좋은 분석글이 있어 링크를 공유합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3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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