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고 퀴로가(Rodrigo Quian Quiroga) - "망각하는 기계(The forgetting machine)"
The Forgetting Machine 은 뇌과학자인 Rodrigo Quian Quiroga의 책으로, 영국 레스터 대학의 뇌과학자인 Rodrigo Quian Quiroga가 인간의 기억에 대해서 쓴 대중서이다. 과학적 지식을 쉽게 전달한다는 본연의 목적을 잘 달성했을 뿐 아니라, 이를 다양한 철학적 맥락과 연결지으려는 저자의 노력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뇌과학의 최신 연구결과를 소개함으로써, 우리가 기억에 대해 갖고 있었던 다양한 오해들도 불식시켜 준다.
"We remember almost nothing." (사실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Our memories are shaped and stored based on our interpretations of them."
(우리의 기억은 그에 대한 해석을 바탕으로 생성되고 저장된다.)
"The brain has a limited capacity, and we should focus its resources on process of comprehension and thought, not on memorization."
(우리의 두뇌는 한정된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기억보다는 이해와 사고 처리를 위해 그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낫다.)
젊었을 때 필자는 여행을 가도 사진을 잘 찍지 않았다. 여행의 소득이란 생경한 장소에서 느끼는 해방감과 도취감이지, 잘 보지도 않을 사진을 남기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 처럼, 우리는 우리 삶의 가장 소중한 순간, 가장 감동스러운 자극 조차도 다 잊고 마는 망각의 기계다. 한 장의 사진이라도 남긴 여행과 그렇지 않은 여행은 10년, 20년이 지났을 때 기억나는 정도가 완전히 다르다.
1. 우리는 "얼마나" 기억하는가?
우리는 살면서 보고 들은 것을 대부분 기억한다는 엄청난 착각 속에 살고 있다. 어디선가 한 번 보고 들은 것들은 어렴풋하게나마 다 기억이 나는 것 같지 않는가?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사실 "거의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일단, 우리 몸이 느끼는 감각 중 아주 일부만 뇌로 전달된다. 예를 들어, 우리의 눈은 10Mbsp (1초당 백만 비트)의 속도로 시각 정보를 뇌로 전달하지만, 실제 뇌에 입력되는 것은 그 천분의 1에 불과하다. 이렇게 전달된 감각은 또한 인지 (또는 해석)의 과정을 거쳐 뇌에 저장되며, 이 과정은 과거의 기억에 크게 의존한다. (달리 말해, 과거의 기억이 전혀 없는 사물이라면, 우리는 눈으로 보더라도 이를 알아보지 못한다.)
이렇게 감각 정보가 뇌에 저장되면, 이는 또 "감각 기억 -> 단기 기억 -> 장기 기억"의 변환 과정을 통해 일부만 장기 기억으로 저장되며, 이미 저장된 장기 기억 역시도 시간에 따라 점차 사라져간다. 저자가 인간을 "망각하 기계 (The forgetting machine)"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2.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는가?
우리의 기억들은 그에 직접적으로 대응되는 뉴런이 물리적으로 뇌 속에 형성됨으로써 저장된다. 이 과정에서 서로 연상되는 기억들에 해당하는 뉴런들이 서로 직접적으로 연결됨으로써, 한 기억을 꺼내게 되면 연관된 다른 기억가지 딸려오게 된다. 필자가 2000년대 발라드를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면 조금의 노력도 없이 대학생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는 이유다.
이렇게 기억 역시도 물리적인 방법으로 저장되는 것이다 보니, 기억에 사용되는 뉴런의 갯수와 기억의 용량은 정확히 비례한다. 과학자들의 추산에 따르면, 우리가 평생 기억할 수 있는 용량은 고작 125MB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기억을 더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인간이 뇌의 극히 일부만 활용한다는 것은 잘못된 가설이며, 우리는 뇌의 모든 부분을 사용하고 있다. 다만, 뇌는 정보를 기억하는 것 외에도, 이를 처리하고, 이해하고, 저장하고, 몸에 명령을 내리는 등 수 많은 다른 일들을 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진정한 지능 (intelligence)이란 많이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뇌 자원에 저장되는 정보들을 적절한 개념으로 구조화하여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에 있다.
3. "나"의 존재는 결국 기억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여기서 저자는 약간 더 철학적인 영역으로 넘어간다. 결국 인간의 자아는 살면서 축적하게 되는 기억의 집합이며, 그 기억들은 현상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에 기초한다. 인간의 뇌를 컴퓨터의 저장소와 다르게 만들어 주는 것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대신 선별적인 기억을 통해 그 정보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있는 것이다.
짧은 덧글. 본인이 잊고 싶지 않는 소중한 기억이라면, 다분히 의식적으로 이를 상기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기억을 상징하는 사진을 찍어두든, 연관되어 떠올릴 수 있는 음악을 들어두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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